게으름에 대한 찬양 - 버트런드 러셀



- 현대의 기술은 여가를 소수 특권 계층만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공동체 전체가 고르게 향유할 수 있는 권리로 만들어 주었다. 근로의 도덕은 노예의 도덕이며 현대세계는 노예제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 일하는 사람들은 장시간 일을 해야만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어 굶어죽게 방치되었다. 왜? 일은 의무이므로, 사람은 그가 생산한 것에 비례해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근면성으로 대표되는 그의 미덕에 비례해 임금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노예 국가의 도덕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생겨난 상황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다. 그러니 결과가 비참한 것은 당연할 수밖에.


- 만일 사회를 현명하게 조직해서 아주 적정한 양만 생산하고 보통 근로자가 하루 4시간씩만 일한다면 모두에게 충분한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고 실업이란 것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부자들에겐 충격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여가가 주어지면 어떻게 사용할지도 모를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 여가의 현명한 이용은 문명과 교육에 의해 가능하다. 평생 동안 장시간 일해 온 사람이 갑자기 일을 하지 않게 된다면 따분해질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상당한 양의 여가 없이는 최상의 많은 것들로부터 차단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박탈을 겪어야 할 이유는 이제 더 이상 없다. 다만 우매한 금욕주의ㅡ그나마 자기는 지키지 않으면서 남에게나 강요하는ㅡ가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과도한 노동을 주장케 할 뿐이다.


- 이것은 남자들이 여자들을 성적 노예 상태에 놓아 두면서 거기에는 뭔가 특별한 고귀함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려고 애써온 것과 똑같다. 러시아에서는 육체 노동의 훌륭함에 관한 모든 가르침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졌고 결국 다른 누구보다도 육체 노동자가 존경받는 데까지 이르렀다. 근본적으로 보자면 복고주의적인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지만 목적은 구시대와 달랐다. 


- 과거에는 속편하게 노는 것에 대한 수용력이 있었다. 그러나 능률 숭배로 인해 그러한 부분은 사라져 버렸다. 현대의 인간은 모든 일이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자체를 목적으로 일하는 법이 없다. 


- 이익을 가져오는 것만이 바람직한 행위라는 관념이 모든 것을 뒤바꿔 버렸다. 당신에게 고기를 제공해 주는 정육점이나 빵을 제공하는 빵집 주인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들은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제공해 준 음식을 즐길 때의 당신은, 일하는 데 필요한 힘을 내기 위해 먹지 않는 한 불성실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생의 행복과 환희가 충만할 것이다. 신경쇠약과 피로와 소화불량증 대신에 말이다. 필요한 일만 함으로써 기력을 소모하는 일 없이 여가를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여가 시간에 지쳐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므로 사람들은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류의 오락거리들만 찾진 않을 것이다. 적어도 1퍼센트는, 직업상의 일에 써 버리지 않은 시간을 뭔가 유용한 것을 추구하는 데 바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일들은 그들의 생계와 관련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독창성이 방해받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나이 많고 박식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표준에 맞출 필요도 없을 것이다.


-프랑스 혁명이 신사 문화에 일격을 가하는 한편, 기계의 발달은 비신사적인 기능이 발휘될 수 있는 새롭고도 놀라운 영역을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그후 백오십 년을 거쳐오는 동안, 사람들은 '무용한' 지식의 가치에 대해 점점 더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고, 반면에 공동체의 경제적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것만이 가치가 있는 유일한 지식이라는 믿음이 점차 확산되었다.


- 미적 가치를 담아내는 것으로서의 말의 개념은 사라져가고 실제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말의 유일한 목적이라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 이제 지식은 그 자체로 좋은 것, 혹은 폭넓고 인간적인 인생관을 세우는 수단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전문적 기능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같은 현상은 과학 기술과 군사적 필요에 의해 야기된 사회 통합의 일부일 뿐이다. 정치와 경제간의 상호 의존성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커짐에 따라 사람들로 하여금 내 이웃들이 유용하다고 여기도로 강요하는 사회적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 현재의 세계는 성난 자기 중심적 집단들로 꽉 차 있다. 이들은 인간의 삶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할 뿐 아니라 한 발 양보하느니 차라리 문명을 파괴시키고 말겠다는 태세들이다. 이 같은 편협증에는 아무리 많은 과학 기술적 지식으로도 해독제를 마늘어 내지 못할 것이다. 개인 심리에 국한된 편협증이라면 역사, 생물학, 천문학 및 자존심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당한 시각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게 해줄 수 있는 모든 학문들에서 해독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필요한 것은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특정한 정보가 아니라 전체의 시각에서 본 인생의 목적에 관한 지식이다. 여기에는 예술, 역사, 영웅적인 사람들의 인생 접하기, 우주 차원에서 볼 때 인간은 한심할 정도로 우연적이고 하루살이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등이 포함된다.


- 어느 시대든 인생은 고통으로 차 있었지만 앞선 두 세기보다 우리 시대의 인생이 더 고통스럽다. 고통에서 벗어나려 하면 인간은 하찮아지고, 자기 기만에 빠지게 되고, 엄청난 집단 신화를 만들어 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순간적인 완화책은 장기적인 고통의 근원만 증가시키는 꼴이다.


- 민주주의 약점이 어떤 것이든, 사회주의가 영국이나 미국에서 성공하기를 희망할 수 있으려면 오직 민주주의에 의해, 또한 대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할 때만 가능하다. 고의든 아니든, 민주적 정부에 대한 존경심을 약화시키는 자는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파시즘의 가능성만 높여 주고 있는 것이다.


- 우리의 태도가 변하게 된 이유는 합리주의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인공 조명에도 있다. 현대 도시의 거리를 걸어보면 밤하늘의 별을 보기가 힘들다. 시골에서도 우리는 전조등을 밝게 켜고 차를 몬다. 우리가 하늘을 더럽혔기 때문에 이젠 몇몇 과학자들만이 변함없이 별과 행성과 운석과 혜성들을 지켜볼 뿐이다.

우리의 일상 세계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인공적이다. 이로 인해 얻은 것도 있지만 잃은 것도 많다. 안전한 자신의 영토 안에서 인간은 점점 더 사소해지고, 교만해지고, 약간씩 미쳐간다.